한국오픈 with KOLON

세계적인 대회를 향한 끊임없는 전진에 KOLON이 함께합니다.
  • 한국오픈의 변화를 가져온 코오롱그룹

    한국오픈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며 국제경기로서의 위상과 전통을 갖게 됐다

    “권위의 상징이었던 한국오픈은 1990년부터 현재까지 ‘코오롱’이라는 타이틀 스폰서 날개를 달고 한국 최고 권위를 이어가며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다.”

한국오픈의 변화를 가져온 코오롱그룹
나날이 발전하는 KOLON KOREA OPEN

권위의 상징이었던 한국오픈은 1990년부터 현재까지 ‘코오롱’이라는 타이틀 스폰서 날개를 달고 한국 최고 권위를 이어가며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다.

지난 1990년 대회의 공동주최사가 된 코오롱 상사는 이후 대회를 발전시키고 내셔널타이틀에 걸맞은 영향력을 확보하기 우수한 선수를 초청하고 새로운 이벤트를 개발하는 등 대회의 질은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대회의공동주최를 맡은 첫해인 1990년과 91년에는 당시 미국PGA투어 4승을 기록하며 스타선수로 발돋움하고 있던 스코트 호크(미국)를 초청했다. 두 대회에서 스코트 호크는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선수들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자극제 역할을 했다. 비록 내셔널타이틀은 외국인에게 연속으로 넘겨줬지만 한국골프의 눈높이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리 큰 손해는 아니었던 셈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한국오픈은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된다. 이젠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적인 대회로 발돋움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KOLON KOREA OPEN의 역사

새로운 의지를 나타내고자 2001년에 메이저급 선수들을 초청하며 화려한 서막을 올린다.

    • 1999년

      브리티시 오픈 우승자 폴 로리(스코틀랜드) 등 메이저급 선수들을 초청하며 화려한 서막을 올린다.

    • 2001년

      메이저대회 7승에 빛나는 닉팔도(잉글랜드)

    • 2002년

      타이거 우즈와 비견되는 ‘유럽골프의 신성’ 세르히오 가르시아 (스페인)을 초청했다. 가르시아는 이 대회에서 한국골프 최소타 기록인 265타(-23)를 세우며 화려한 골프가 무엇인지 대중 앞에 선보였다.

    골프선수

    • 2003년

      우정힐스로 무대를 옮긴 제46회 코오롱 한국오픈선수권대회는 성대결’을 카드로 뽑아들었다. 괴물로 불릴 정도의 장타를 과시하는 존 댈리(미국)와 로라 데이비스(영국)의 맞대결이 바로 그것. 2003년도 한국오픈 우승으로 다시 한 번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존 댈리는 이후 PGA 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 2007년

      50회 대회를 맞아 총상금을 10억(우승상금 3억)으로 증액하고 당대 최고 스타플레이어 인 비제이싱을 초청하여 한국 골프 발전 의 촉매역할을 하였다. 비제이싱은 한 차원 높은 샷을 갤러리들에게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 2009년

      52회 대회에서는 떠오르는 신성들이 총집합 하였다. 포스트 타이거우즈라 불리던 로리맥길로이와 이시키와료, 디팬딩 챔피언 배상문 등 차세대 골프 스타들이 총 출동하여 한국남자 골프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었다.

    • 2011년

      PGA를 대표하는 영건 리키파울러가 출전하여 한국오픈에서 프로대뷔 첫승을 이뤄 내었고, 2013년 에는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1위를 탈환한 로리맥길로이가 다시한번 한국을 찾으며 한국오픈에 남 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KOLON KOREA OPEN의 미래

KOLON KOREA OPEN BANNER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먼 훗날까지도 한국골프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그 길에

코오롱 한국오픈이 함께할 것이다.

지난 1958년 첫발을 뗀 한국오픈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화제와 기록들을 남겨왔다. 이토록 많은 기록들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수한 선수들이 대거 참가해 대회의 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골프가 발전하는 과정을 그대로 투영해주고 있는 한국오픈은 앞으로도 수 많은 기록을 쏟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