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픈 스토리

한국오픈 코리아의 대회소사 및 창립 스토리
한국오픈 스토리
한국 골프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전통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
코오롱 한국오픈 골프 선수권대회
  • 1958 ~ 1980년대
    - 1958년 9월 11일, 제 1회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 개최, 미국의 무디 초대 챔피언 등극
    - 1966년 한국골프협회(현, 대한골프협회) 주관 시작
    - 1970년 아시아서킷대회로 대회 병행 개최
    - 1982년 아시아서킷대회에서 대회 분리 개최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 시상식 기념사진
  • 1990년대
    - 1990년 대한골프협회 / 코오롱상사(주) 공동 주최 시작, 미국 PGA투어의
    스타 스코트 호크 초청, 우승
    - 1995년 국내 최고의 상금이 걸린 대회로 격상(상금 40만 달러)
    - 1996년 대회 명칭 변경(엘로드배 한국오픈골프선수권)
    - 1998년 대회 명칭 변경(코오롱배 한국오픈골프선수권), 아시아 PGA투어
    스페셜 이벤트로 동시 진행
    플레이 하는 선수
  • 2000년대
    - 2000년 10월 5일, 제 43회 코오롱배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 개최
    - 2001년 9월 12일, 대회 공식 서브타이틀 2001 KOLON KOREA
    OPEN으로 개최,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 닉 팔도, 폴 로리 초청
    - 2002년 9월 5일, ‘유럽골프의 샛별’ 세르히오 가르시아 초청
    한국골프최저타 기록(265타)우승
    - 2003년 10월 9일, 우정힐스로 무대를 옮겨 제46회 코오롱 한국오픈골프
    선수권대회 개최, ‘세기의 장타자’ 존 댈리, 로라 데이비스 초청 성대결
    - 2004년 9월 9일. US PGA투어 방식 도입한 대회운영 및
    코스 세팅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대회로 평가
    - 2005년 하나은행과 코오롱 공동 타이틀 개최
    - 2006년 레티프 구센(37, 남아공)과 버바 왓슨(28, 미국) 초청
    - 2007년 비제이 싱(44, 피지) 초청
    - 2007년 총상금 10억/우승상금 3억으로 증액
    당대최고 스타 비제이싱(44,피지) 초청
    - 2008년 앤서니 김(24, 미국)과 이안 폴터(32세, 영국) 초청
    - 2009년 대니 리(19, 뉴질랜드)와 로이 매킬로이(20,북아일랜드) 초청
    - 2010년 앤서니 김(26,미국), 양용은(39,한국), 대니 리(20,뉴질랜드) 초청
    - 2011년 로리맥길로이(22,북아일랜드) 리키파울러(22, 미국)
    - 2012년 이시카와 료(21, 일본)
    - 2013년 로리맥길로이(24, 북아일랜드)
    - 2014년 대회 상금 증액(총상금 12억/우승상금 3억)
    - 2016년 예선전 참가 자격 확대(아마추어)
    - 2017년 The Open 출전권 제공(한국오픈 우승자, 준우승자)

    플레이 하는 선수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 챔피온 시상자

한국 오픈 골프선수권 대회의 발차취 - 창립과 발전

한반도에 프로와 아마추어 골퍼 모두에게 참가 기회가 열린 오픈(Open) 대회의 시작은 1958년 9월 11일 군자리(현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위치한 서울컨트리클럽(CC)에서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가 열리면서부터다.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가 열린 3개월 뒤에 한국오픈이 창설됐는데, 당시엔 아직 골프 관련 단체 조차 결성되지 않아 서울CC 주관으로 진행됐다. 초창기에는 프로 선수의 숫자가 적은 탓에 주한 미군이나 일본, 대만에서 온 선수들이 우승컵을 번갈아 들어올렸다. 주한 미군으로 근무하던 오빌 무디가 첫 대회부터 3회 연속 우승했고, 5, 6회 대회에서는 성적 상위 5위에 한국인이 아예 없을 정도였다.

1966년 한국골프협회(현 대한골프협회인 KGA의 전신)가 창립되면서 한국오픈은 내셔널타이틀 대회로서의 외형과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다. 나흘간 프로 골퍼와 최고의 아마추어가 함께 경기를 치러 최고를 가리는 메이저 이벤트였다. 1970년(13회) 아시아·태평양골프연맹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순회하는 골프 투어인 '아시아골프서키트'가 창설되자 한국오픈은 81년까지 12년간 국제 규모 대회로서의 위상을 키워 나갔다.

1982년 매경오픈이 창설과 함께 아시아골프서키트를 가져가자 한국오픈은 한동안 국내 대회로만 치르기도 했다. 주춤했던 한국오픈이 활력을 되찾은 것은 1990년(33회). 코오롱그룹이 대회의 공동 주최사가 되면서 국제 대회로서의 위상을 되찾는다. 후원사였던 코오롱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대회의 권위를 높여 나갔다.

이전의 한국오픈이 아시아권에만 머문 대회였다면, 그 이후로는 전 세계 톱랭커들이 참가하는 대회로 변모해 나갔다. 1990, 91년에 초청 선수인 미국의 스콧 호크가 2연패를 했고, 이후로 닉 팔도, 아담 스콧, 어니 엘스, 레티프 구센 등 세계적인 선수들의 출전이 이어지면서 화제를 낳았다.

한국오픈이 한국을 대표하는 내셔널타이틀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후원사의 전폭적인 지지가 밑바탕이 되었다. 1996년(39회)부터 코오롱은 타이틀스폰서가 되면서 대회 명칭이 '엘로드배 한국오픈골프선수권'으로 되었고, 2년 뒤에는 '코오롱배 한국오픈골프선수권'으로 변경된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도 다수 초청되었다. 2001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던 닉 팔도, 폴 로리가 출전했고, 이듬 해에는 '유럽골프의 샛별'로 부상하던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출전해 한국골프 최저타 기록을 작성한다. 세계 랭킹 1위였던 비제이 싱이 50주년 대회에서 우승하는가 하면 리키 파울러는 이 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PGA투어에서의 우승을 줄줄이 엮어냈다. 북아일랜드의 로리 매킬로이는 3번 출전해서 그 때마다 우승을 넘보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양용은은 2006년에 처음 우승한 뒤로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HSBC챔피언스에 초청되었고,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우승하면서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코오롱 한국오픈은 매년 가장 난이도 높은 코스 세팅을 선보였고,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를 골라냈다. 한국오픈을 통해 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무대로 나아갈 자신감과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동시에 한국 골프는 한국오픈을 통해 세계무대에서 권위와 품격을 인정받기도 했다.